이스터섬 모아이 칠성상은 간절함의 염원이 담긴 등대와 통신수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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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인섭
- 작성일 : 26-03-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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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회원님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절체절명등 엉뚱한 글 올리는 최인섭 회원입니다
인공(재미나이)가 생기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역사와 유물등에 관해 묻다가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석상을 보게 됐습니다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이스터섬에 조각상이 왜 생겼는지 많은 가설이 있지만 저 나름대로 직감이 떠올라 유추를 했습니다
처음 해안가를 바라보는 7성상 사진을 보고 잠시후 이건 등대야
다음 귀가긴 조각상을 보는 순간 그 섬에는 개 가 없구나 그러면 자연스레 청각이 발달된 사람은 추앙을 받고 추종심을 유발 하게 되고
다음 입이 삐죽 나온 조각상에서는 서러움과 권위가 공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네이버 에서는 이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조각상이라 합니다
다음 석상의 재료는 단기공이니 자연 공명으로 저주파가 발생되며 그렇다면 이건 돌나팔 기능입니다
이상 네 가지로 저 나름대로 인공에서 자료와 데이터를 제공 받으며 추리 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추론이 됩니다
서기 1000년 전후 고향에서 떠난 폴리네시아인 50여명이 섬에 도착 이후 200년간 인구는 인공 계산 2000명 전후로
그동안 그들은 작고 ,그래도 크지만 아담하고 둥글 둥글 한 석상을 섬 여기저기 세우며 조상 숭배 및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늘면서 불화도 생기고 부족간 의 안녕도 문제가 됩니다
이때 외부의 침입이나 소식등,부족간 경계를 넘나들시 경계를 맡을 개가 없으니 자연스레 청각이 발달한 한부류의 집단은
자연 섬 주민으로부터 경외심과 추앙심을 받으며 부족간에 중심이 됩니다
1200년경 이때부터 귀가 크고 발달된 (전설 참고)장이족은 서서히 지배자가 되고 귀작은 단이족은 피지배자가 되어
점점 커지고 큰귀를 가진 석상을 조각합니다. 오랜세월 인구는 늘어나고 식량과 자원도 부족해지고 300여년에 이르는 힘든 노동에
단이족 의 불만이 팽배해질때로 커질때 장이족이 제안 했거나 아니면 단이족과 합의했거나 섬에서의 고립감과 지친 삶을 벗어나고자
1500년 전후
모든 석상은 마을을 향해 있지만 단이족의 희망과 기다림을 담은, 해안을 바라보는 7성상을 세우게 됩니다
동시대의 큰귀상과 달리, 둥글한 모습에 마음속 깊이 감추고 있는 조상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서러움을 달래려 단이족의 염원을
담은 등대를, 눈은 저멀리 수평선을 응시하고 가녀린 팔은 구원 되기를 바라면서
단이족에서는 7성상이 우리를 위해 조상들이 고향에서 오리라 굳게 믿고 찾아오라는 등대이고 공명으로 저주파가 발생되어 혹 가까이 있으면
신체 감각으로 저주파를 감지하는 고향의 조상들이 찾아 오겠지 하며 묵묵히 힘든 노동을 견뎌내며 기다립니다
말 못하는 불만은 입 삐죽한 조각으로 말없이 나타내며 기약없이 할아버지 아버지 나 때까지 백년이 지났건만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한밤중 거석을 넘어 뜨리며 무언의 항의도 했으나 장이족은 거석을 넘어 지지 않게 파묻게 하고 모자도 씌우게 하며 더 강한 지배를 하니
노동은 점점 더 고되기만 합니다
1600년 이후 기다리다 지쳐 불만은 분노가 되어 폭발합니다
드디어 장이족과 단이족간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분쟁이 없을수가 없음"
전설의 내용은 단이족이 승리 했다함. 승리후 단이족은 모든 거석을 넘어 뜨리고 분풀이를 했으나 고립무원 상태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자원은 고갈 되어 배를 만들수 도 없게 됐습니다
자포자기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나도 새처럼 날아가고 날아오고 싶다 하며
조인 문화가 형성 되네요
이글이 어느정도 유추가 될때 가슴이 뭉클 저도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1956년생 최인섭 수원 거주 "이스터섬 모아이 칠성상은 간절함의 염원이 담긴 등대와 통신수단" 이었다
실제 저주파가 발생이 되며 해발 140m 높이의 7성상은 광달거리 약 42km 에 이릅니다
공유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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