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롤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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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주영
- 작성일 : 03-10-2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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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소득없는 말들로 게시판의 용량을 조금이라도 잡아 먹게됨을 조심스러워 하며...
여덟번째 롤의 후 기
필름을 8롤이나 소비시켰다.
기록용으로 디카를 구입해서 마구 찍어대다. 어라~~ 사진이 재밌네 하면서 아날필름으로 획까닥 선회한것이다. 왜 이리됐는지 잘 모르겠다. 사진의 깊이감이니 하는 質 적인것은 분명 아니었고, 사진을 찍으려면 적어도 필름으로는 찍어야지하는 式 의 스타일러쉬한것이 더 작용했던것은 아니었는지 싶다.
암튼, 어마무시한 망원렌즈끼고 아침산책길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어서 될수있으면 사진찍네하는 표가 안나는 컴팩트한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나마 컴팩트하다는 펜탁스 SRL을 거쳐 이런류의 사람에게는 당연한 (?) 귀결으로 보이는 어마무시(?)한 Leica 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필름 8롤 찍는 동안 지구가 몇바퀴나 끼꺽거리며 돈듯하지만 ... 겨우 두달이다. 하기야 평생에 필름 한롤도 소비시키지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대다수의 지구인들에 비하면 어마무시한(?) 짓을 한것이다.
오늘 충무로에 나갔다, 못 볼것을 봤다. 모 슬라이드 현상소 접수대옆에 쓰레기봉지로 쌓여있는 엄청난 량의 35mm 빈 필름통들을 본것 이었다. 혹탈이라 불렸던 영화 " 혹성 탈출 " 에서 찰슨 헤스톤이 마지막 장면에 해변가에 비스듬히 드러누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고 인류의 명말에 아연경악했던것 처럼 ( 중학교때인가 나는 이 영화보고 몹시 심한 충격을 받았다...필름통과의 대비는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 수많은 빈 필름통들이 내게 계시록적질문을 던졌다.
근데, 사진은 왜, 찍는데 ?
원체 진득한 체질도 아니긴 하지만, 회의가 너무 빨리왔다. 8롤의 사진들을 보면 뻔한 주제에 뻔한 시각의 사진들. 그나마 필름값,현상비가 아까워 여기다 포스팅을 하니...ㅉㅉㅉ. 이제 겨우 필름 8통을 찍고서 원초적 질문을 하다니. 여기 이 클럽의 선배들이 혀를 차며 가소로워 할일이다. 끌끌~~
추억의 넌센스 퀴즈에서
죽여야 사는 사람은 ? ----> 장의사
찍어야 사는 사람은 ? ----> 사진사
이렇게 유치허무한 소릴하면서 중학교때 낄낄거렸다....근데 나는 찍어야 사는사람도 아니고, 찍어 돈버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찍나 ? 이 의문을 위해 골치아픈 미학책을 펴보긴 싫코, 수잔손타그, 롤랑바르트를 읽을 수준도 아니다. 암튼 왜? 내가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지 매우 궁금해져버렸다. 내가 찍은 대부분의 사진들은 사회적 기능이나 역활없이, 인터넷 상의 몇 바이트의 치기어린 포스팅이후, 세상과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릴것이다. 내 기억속에서도 물론 말이다. 나의 찍는 행위에도 사회적 기능이 있긴있다. 필름과 카메라를 소비시켜 돈의 순환을 원활히하는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기능이 있지만, 이건 사진관련 아니라도 얼마든지, 열심히 매일하고있으니 그게 꼭 사진과 연관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심플라이프를 주창하는 단순한삶으로의 여정도 많이 흔들흔들거려서 사진찍기 시작한 이후부턴 정신도 맨날 몽롱하다. 눈앞의 모든것들이 피사체로 보이면서 눈팅 샷을 시작한 것이다. 팡팡~~ 돈 안드는 눈팅샷이어서 경제적이고 여러 쓰레기(?)를 안남기니 환경친화적인 발전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뭘 보든 몽롱해지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것이다. 하얀 백지앞에서 창작의 현기증으로 구토하는 말라르메도 아니고, 백색의 공간을 채우려다가 채우려다가 결국 절대 빈 공간으로 남겨버린 말레비치도 아니지만, 아무튼 상당히 어지럽다. 모든게 흘러가버려야 하는게 세상편하게 사는 이치인 지라...한눈으로 본것, 한귀로 들은것 , 안 좋은 기억들, 어느 정도는 흘려가버려야 인생이 순화될 터인데.이건 흘러가지않고, 모두 날 좀 잠시, 남겨 주소...하고있으니, 당근 어지러울수밖에...
그래 사진을 왜, 찍나 ?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공허한 시간속에 뭐 재밌는일 없나해서 ? 흘러가는시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파서 ? 대자연의 오묘한조화속에서 절대자의 숨결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 의미없이 흘러가는 일상과 내 주변의 시간들에 막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 가족들을 사진을 꺼내보며 미소지을 그 미래를 위해 ?
알타미라 동굴벽화이전에 이미 인류의 최초의 이미지(?)가 있었다 한다. 이미지나 그림이 아니라, 거의 흔적의 수준이라 잘 안알려졌지만. 프랑스 미술사학자 르네위그(기억 가물?)가 사람이 겨우 한사람누울만한 동굴 후미진곳에서 < 사람 손바닥형상 >의 흔적에 가까운 인류최초로 인간의 손으로 남긴 흔적을 발견한것이다. 다른 사람이 전혀 들어올 가능성이 없는 동굴벽에다 어떤 원시인이 자기 손바닥을 그 벽에 대고 흔적을 남긴것이다. 그는 도데체, 어떤 의도로 이런 행위를 했을까 ?
A U T O - C O M U N I C A T I O N ... 즉, 실존적인 자기와의 대화라고 르네위그는 말한다. 사진이 필름, 프린트물 이라는 물질적인 아톰으로써 구체화되기전에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피사체와의 대화에서 부터 사진을 시작하듯이 원시인도 벽에다 자기와의 대화를 한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자네는 자네와 대화하려고 사진을 찍나 ? 뭐 딱히 그런건 아닐것이고. 암튼, 잘 모르것다.
얼마전부터 원당의 종마공원에 말을찍으러 가고싶다. 너는 왜 ? 말을 찍고싶은 거지 ? 이미 수많은 사진동호회 사람들이 다 찍어간 이미지들을 말이야. 이국적인 풍광의 자연속에서 뛰노는 말이 멋있어서 ? 어떤 드라마,CF에 등장했던 그 장면에서 패러디라도 연출해보려고 ? 아님, 라이카라는 좀 티나는 사진기를 둘러메고 자연속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 먼저 가신 아버님이 원체 말을 좋아하셨으니, 말을 보거나 찍으면서 아버지를 느끼려고 ? 글쎄...잘 모르겠네. 정말 잘 모르겠네. 뭘 그리 골치아프게 사나 ? 복잡한 이유는 따지지말고 어슬렁거리면서 피사체와의 교감이나 즐기지...
이유나 목적을 알고도 제대로 살지못하는 인생을 살고있으면서, 또 이유를 알아서 무엇하리...
어째뜬 사진들 찍으시면서 행복들 하시길...
댓글목록
이영호님의 댓글
이영호
전 또한 회원님과 같은 입장이긴 한데,,,,글쎄 무언가 찾기 위한 마음의 사유로 귀결되어가고 있는데,,,,전 그 무언가가 또 궁금해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저 자신의 조금 철학적인 사유의 사치를 다시 한번 느껴 봅니다....
송화중님의 댓글
송화중
아..어렵습니다.. 그냥 오늘도 사진기 덜렁 메고..어딘가 뻔한 곳을 찾아갈 저에게 뭔가 두통을 안겨주십니다..^^ 그냥 피사체와의 교감도 못하는 넘이니..이것부터 해볼랍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인듯 합니다..
이승재님의 댓글
이승재
그 '클래식 카메라'에 이상은 없었나보네요 ^^
남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진 감상 잘 했습니다.
'아.. 좋은 사진이다..' 하면서 봤던 사진이 최주영님 사진이더라구요^^
최주영님의 댓글
최주영
아고~ 늦은밤.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잡념을 가지고 괜한 공개적 부담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송구스럽습니다. 피사체와의 교감이란게 별게 있을까 싶습니다. 그냥 파인더 보면서 즐거워하는것 이겠지요. 사실 밤에 쓴글이라 좀 고뇌(?) 스럽게 보였겠지만, 정작 본인은 별 생각없이 헐렁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중량천이나 한경변에서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을 관찰하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자전거를 타고 여유자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많은 장치를 갖춘 매니아적 자전거를 타고 극한(?)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더 군요. 무엇을 타고 어떤 길을 가든 각자의 재미를 즐기는것이니 보기가 좋터군요.
아무쪼록 즐겁게!!! 사진 많이 찍으시고, 복된 나날되시길...
덧글을 막 올렸는데...이승재님 글이 올라왔군요..놀람. 네, 클래식카메라 이상없이 너무 많은 즐거움을 나에게 선사하고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최승욱님의 댓글
최승욱
구구절절 와 닿는 얘기입니다...
항상 카메라를 사고 팔때 드는 생각들이었죠..
프로(사진으로 먹고사는 사람)가 아닌 이상은..
사진은 감성적인 행위인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프로사진사가 감성적이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뷰파인더에서 사물을 바라보면서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죠...
시각과 손의 감촉과 대뇌에 전해지는 감성적 느낌..등등
그리고 결과물의 확인..지나간 흔적들 보기 등등
이런 감성적 행위들이 좋아서 아닐까요..
즐거운 사진생활 합시다..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지난 4월에 저는 28롤을 찍었더군요.
스캔 한 것을 월별로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찍은 량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캔하지 않고 바로 인화를 한 중형은 제외구요.
사진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찍을 때만큼은 많이 하는 편입니다.
내가 왜 사진을 할까....
이렇게 한적하고 쓸쓸한 곳에, 이 어두운 곳에 왜 나는 나와있을까....
그렇지만 늘 들려오지 않는 무엇인가와 맞선 저 자신을 볼 뿐이었습니다.
이제 차츰 사진하는 이유를 묻지도 않습니다. 그런 이유를 묻는 것은 왜 사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살고 있기에 이유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왜 사느냐는 육박성질문은 난감하기만 해서요.
이제는 현장에 나가있으면 그 어둠도 그 언덕도 제가 있음을 받아주고 기꺼이 모델이 돼준다는 느낌에 행복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나 잠시 머물며 너와 마주하고 있단다' 하며 나누는 대화가 제겐 사진인듯 싶습니다.
정말 오래된 글에 생각나는데로 적어봤습니다...
오래 된 글이 이렇게 되살아나면 당혹스러울 것 같긴 하지만....
이세욱님의 댓글
이세욱
와. 임규형님 아바타사진 너무 좋습니다 ^_^
음... 처음에 사진이라는것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겼던게 별을 보기 위해서였고...
제 카메라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가족들의 기쁨이었고 자기 만족이라 그런지,
요즘에서야 문득 문득 사진은 왜 찍는가 라는 생각을 늦게나마 해봅니다.
아직까지의 생각은. 단지. 카메라를 만지는게 즐겁고, 사진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생각을 멈추는게 나을거 같기도하고요. ^^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루크님에게...
제 아바타 사진은 제가 좋아하는 모델 미호 요시오카의 사진집 A Place in the Sun에서 가져온 것이랍니다.
제가 본 것중 저런 각도로 찍은 느낌 좋은 사진이 두 개 더 있습니다.
Marc Johnson의 The Sound of Summer Running이란 앨범 재킷사진과
Paul Gilbert의 Flying Dog 재킷 사진....그 중 요시오카를 더 좋아해서 썼답니다.
전 밤사진을 찍어보려 시작했었는데....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르네 위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곤 사랑에 빠진 나르시소스가 생각이나 정신을 차리고 얼른 사진에서 멀어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해요.
..
구창욱님의 댓글
구창욱
공감과 더불어 배움이 있는 글이네요..
예전엔 한 롤 찍고 한 컷, 한 컷 볼때면 정말 좋았는데 요즘은 왠지모를 압박감이 들어서 셔터 누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당대 최고라 불리우는 렌즈와 바디를 소유한 기쁨도 잠시, 기계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이더군요.
제 나름대로 사진에 대한 목표와 로망이 있기에 자꾸 '이러면 안되는데, 이 정도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소심한 마음이 점점 더 소심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반대로 공개적인 곳에 보이기가 민망하고 부끄럽고.....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심각한걸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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